바람이 불면, 나무로 만든 통 장사가 돈을 번다는 통설이 있습니다.
이는, 바람이 불면, “사람의 눈이 먼다”고 하는 말로 대별되어, 아마도 바람의 영향으로 눈 뜨기가 곤란하다는 이유에서 일 것입니다.
눈 뜨기가 곤란하니까(?) 지키기도 어렵다는 뜻으로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을 못 보는 장님은 “세미라는 악기를 연주해야 한다”고 합니다.
세미 악기는 고양이 가죽으로 만들기에 고양이 가죽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로 인하여, 고양이가 없어지므로 써, 쥐가 많아진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는 쥐가 비가 올 때에 밖에 나가지 않고, 마른 땅의 응지를 다니며, 나무통을 갈가 먹게 되어, 통이 많이 필요하게 된다는 웃지 못 할 그럴듯한 이치와 속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러우면서도, 그럴듯한 속설에서 모두가 웃는 웃음의 세계로 피안대소하며, 모두가 자유로워지게 됩니다.
웃는다는 것은 바보스럽게 보일 위험이 있지만, 마음이 활짝 열리는 열린 문이 됩니다.
거짓과 허위, 가식과 진실이 완연하게 달리 표시되는 만복의 문이 됩니다.
반대로,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감상적인 사람으로 보일 위험과 동시에 어두워 보입니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은 남의 일에 휘말릴 위험이 있습니다.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은 자신의 참 모습을 드러낼 위험이 있습니다.
대중 앞에서 자신의 기획과 꿈을 발표하는 것은 그것들을 잃을 위험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되돌려 받지 못할 위험이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죽을지도 모를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증거 입니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절망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하면서, 희망을 시도하는 것은 실패 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그렇다고 해서, 위험이 있기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것이 옳은 것이냐?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이 옳으냐?”하는 정의를 내리는 것에 대하여는 결과물을 도출하기 전에 올바른 정의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정의론(正義論)분야의 세계적인 학자이자, “공동체주의 이론”의 대표적인 세계4대 이론가로 손꼽히는 샌델 교수의 하버드대 강의“JUSTICE(정의)”를 바탕으로 쓴『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지구촌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하바드대 전체 학생이 7천명도 채 안 되는 대학생 가운데, 무려 천명이라는 15%의 학생들이 강의를 듣는 마이클 샌델의 “JUSTICE(정의)”강의는 하버드대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고, 영향력 있는 수업으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자유로운 사회의 시민은 타인에게 어떤 의무를 지어야 하는가?
정부는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가?
시장의 자유화는 공정한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잘 된 일인가(?) 아니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옳은 일인가?
도덕적으로 살인을 해야 하는 때도 있는가(?) 아니면, 도덕적으로는 누구도 살인하지 않아야 정말 옳은가? 등 우리가 시민으로 살면서, 부딪히는 어려운 질문들을 설득력 있게 풀어가고 있다는 것과 그러한 일들을 상상하며, 새로운 목표를 세워 나가는 것에 또 다른 목표 도전이라는 오묘한 상상력을 키워 나가기 때문에 참여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샌델은 다양한 논쟁에서 극적이고 도전적인 발상을 선보이며, 철학을 이해하면 정치와 도덕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분명하게 알게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정치철학의 중대한 질문을 통하여, 오늘날의 골치 아픈 여러 유형의 문제에 접목시키며, 하버드 대학생들을 사로잡는 샌델의 이야기를 통해서, 생기 넘치는 젊은 층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의론의 세계적 석학으로 생기 넘치는 마이클 샌델 교수는 1953년 미네소타에서 출생했습니다.
브랜다이스대학교를 졸업하고,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되었습니다.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1982년》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공동체주의자’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여,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 마이클 월저, 찰스 테일러 교수 등과 함께 공동체주의 세계4대 이론가 중 한 명이자 존 롤스 이후 정의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로 평가 받게 것입니다.
1980년부터 30년간 하버드대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그의 정의(Justice) 수업은 현재까지 20여 년 동안 하버드대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강의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이러한 명성으로 2002년 로버트 엠 벳 교수와 2008년 미국 정치학회가 수여하는 최고의 교수로 선정된 것입니다.
그의 책, 정의(Justice)란 무엇인가(?)의 제1강에 “옳은 일 하기”에는 행복, 자유, 미덕/어떤 상처를 입어야 상이군인훈장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구제 금융을 둘러싼 분노/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 철로를 이탈한 전차/ 아프가니스탄의 염소치기/ 도덕적 딜레마를 말하고 있습니다.
제2강에는 “최대 행복 원칙” 공리주의에 대한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반박 1: 개인의 권리/ 반박 2: 가치를 나타내는 단일통화/ 대가를 받고 치르는 고통/ 존 스튜어트 밀이 있습니다.
제3강에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에 대한 자유 지상주의 최소국가/ 자유시장 철학/ 마이클 조던의 돈/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의 내용이며,
제4강에는 “대리인 고용하기/ 시장과 도덕”에 대한 징집과 고용, 무엇이 옳은가?/ 자원군 옹호/ 대가를 받는 임신/ 대리 출산 계약과 정의/ 외주 임신에 대한 내용이 있으며,
제5강에는 “중요한 것은 동기다”라는 내용으로 이마누엘 칸트의 권리 옹호/ 행복 극대화의 문제점/ 자유란 무엇인가?/ 사람과 사물/ 도덕이란 무엇인가? 동기를 찾아라/ 도덕의 최고 원칙은 무엇인가?/ 정당한 명령 대 가식 명령/ 도덕과 자유/ 칸트에 대한 의문/ 섹스, 거짓말, 그리고 정치 등을 언급하고 있으며,
제6강에서 “평등 옹호”에 대한 존 롤스의 “계약의 도덕적 한계”를 합의만으로는 부족할 때(야구 카드와 물이 새는 변기)와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을 때(흄의 집과 유리닦이/ 이익인가, 합의인가? /샘의 자동차 수리/ 완벽한 계약 상상하기/ 정의의 원칙 두 가지/ 도덕적 임의성 배제 논리/ 평등주의 악몽/ 도덕적 자격 거부하기/ 삶은 불공평 한가?를 논하고 있으며,
제7강에서 “소수집단 우대정책 논쟁”에 대하여, 시험 격차 바로잡기/ 과거의 잘못 보상하기/ 다양성 증대/ 인종별 우대정책은 권리를 침해하는가?/ 인종분리 정책과 반유대적 할당제/ 백인 우대 정책?/ 정의는 도덕적 자격에서 분리될 수 있는가?/ 대학이 경매로 입학생을 뽑아도 될까(?)라는 내용으로 상상을 갖게 만들며,
제8강은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라는 것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 정의와 텔로스의 영광에 대한 목적론적 사고: 테니스 코트와 《곰돌이 푸》/대학의 텔로스는 무엇인가?/ 정치의 목적은 무엇인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 행동으로 터득하기/ 정치와 좋은 삶이라는 내용으로 생각하게 하면서,
제9강에는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라는 내용으로 충직 딜레마 사죄와 손해배상/ 조상의 죄를 우리가 속죄해야 하는가?/ 도덕적 개인주의를 정부와 우리 모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고 해결 해 가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 특색일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일을 시도하는 것은 실패와 위험이 있기 마련입니다.
생각하는 것도, 실천하기도 어렵다는 난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어떠한 일에도 참여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으며, 도전하지 않는다는 것일 것입니다.
도전과 실천에는 이유 없이 부디치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보통는 어느 조용한 외딴 마을에 별장을 만들고, 그곳에 모여 밤새 대화를 나누며, 가을이면 잘 익은 대추를 따서 대추차를 끓이고 잘 익은 석류로 술을 담그고, 바비큐로 베불리 먹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또한, 겨울이면 황토 흙으로 만든 벽난로에 고구마를 구워 가며 세월의 책장을 넘기고, 그 동안 알고 지내던 소중한 인연들을 초대해서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이런 저런 대화의 꽃을 피우노라면, 향기를 잃어 가는 삶의 밭에 한 송이 예쁜 풀꽃이 피어나리라는 즐거움으로 뒤덮어 갈 것입니다.
누구나 바람처럼 머물다 홀연히 떠나간다는 생각에서 조용한 대지 위에 조용히 쉬어 가는 바람처럼 흘러가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계속 머물지 않는 것이 우리라는 것을 알기에 사는 날까지 기쁨을 잃지 않는 마음으로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가리라!
웃음으로 희망으로 오늘도 내일도 바람처럼 머물며, 이 땅위에서 쉬어 간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땅 위에 살아 숨쉬는 동안, 무사히 정의롭게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정의를 실천하는 공자의 “마음을 닦는 사람의 9가지 모습”을 알아봅니다.
첫째, 밝은 것을 보려 하는 사람
둘째, 남의 말을 새겨듣는 사람
셋째, 항상 온화한 표정을 짓는 사람
넷째, 남을 존경하는 태도를 짓는 사람
다섯째, 조심스럽게 말하는 사람
여섯째, 행동이 신중한 사람
일곱째, 의문점을 풀려고 애쓰는 사람
여덟째, 화나는 일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사람
아홉째, 정의롭게 이득을 얻는 사람이랍니다.
이러한 모습이 정의로운 사람이란 말인가요? 아니면, 2010년 3월 24일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에서 내놓으라 하는 기업가, 저술가, 언론인 등의 유명 인사들이 대학 입학을 거부 받은 실패담을 담아 “실패는 성공을 만든다”는 책을 만들었다고 하는 데, 이렇게 실패한 후에 성공한 사람들이 정의롭다는 것인가요!
여기에서, 우리 모두 생각해 봅니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소개되는 워런 버핏도 19세였던 그때에,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로부터 입학을 거부 답신을 받았다고 합니다.
버핏은 “일시적인 실패가 영원한 패배가 아니고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버핏은 하버드대 입학을 거부당한 후, 존경했던 벤저민 그레이엄과 데이비드 도브가 강의를 하고 있는 컬럼비아대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현재 자신의 투자에 핵심이 되는 이론들을 배웠다고 합니다.
리 볼링거 컬럼비아대 총장도 하버드대를 지원했다가 실패한 후 오리건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밖에 노벨 의학생리학상 수상자인 해럴드 바머스도 하버드대 의대를 지원했다가 떨어졌고, 미국 NBC방송 “투데이쇼” 진행자인 메러디스 비에라도 1971년 하버드대 입학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CNN창립자 테드 터너도 10대때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 입학을 도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WSJ는 입학 거부가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서 매년 하버드대 지원자 2만9천명 가운데에 7%만이 입학 허가를 받는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첫번째 이야기는 살아가면서, 우리는 보통 세 부류의 사람들을 알고 지낸다고 합니다.
첫째는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나에게서 다섯 걸음쯤 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서 서로의 실수에 대해서도 관대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랑하는 이들인데 그들은 나에게서 한 걸음쯤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기 위해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지만, 내가 넘어질 때 함께 넘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나 때문에 자신도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넘어질 때 기꺼이 내게 손을 내민다는 것입니다.
아니 함께 넘어지고 서로 부축해 함께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나를 미워하는 이들인데, 그들은 나와 등을 맞대고 밀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숨소리 하나까지 나의 움직임에 민감하며 여차하면 나를 밀어버리기 위해 꼭 붙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언제나 내 실수를 기다리고 있다가 교묘히 이용하고, 넘어지는 나를 보고 손뼉 치거나 더 많이 다치는 쪽으로 밀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하기 때문에 누구나 서로 사랑과 미움의 기다란 고리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나는 지금 내가 아는 사람들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을까?
이 험한 세상을 살면서, 한 걸음 사이에 두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밀치고 밀리면서 서로 등을 맞대고 서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들이 마음을 바꾸어, 너무 멀리 서 있다면, 조금 더 앞으로, 등 맞대고 서 있으면 조금 뒤로, 함께 넘어지고 일어나는 운명을 같이하는 한 걸음의 거리를 유지한다면, 세상에 몹쓸 전쟁 따위도 없을 것이고, 세상이 좀 더 따뜻해질 것이라는 회안을 같게 합니다.
두 번째 얘기는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 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가장 필요한 사람을 누구인가?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이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善)을 행하는 일이다”라고 말합니다.
즉 바로 지금 내 옆의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내 삶이 더욱 풍부해지고 내가 행복해지는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세번째 얘기는 사는 게 늘 만만치 않아 짜증이 나더라도, 때로는 별로 재미없더라도, 내 옆에 있는 지금 이 사람에게 사랑으로 즐겁게 대하면, 정말 나까지 행복해 진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나도 사랑으로 한번 시험해 보려고 합니다.
아주, 오래 전에 미국에 있을 때 일 입니다.
친구의 이웃이던 킹 부인이 갑자기 좀 와달라는 전갈이 왔습니다.
한국 고아를 입양해 사회복지소에서 아이를 데려오는 날인데, 낯선 땅에 와서 푸른 눈의 엄마를 처음 상면하는 자리에 같은 한국인이 같이 있어주며, 한국말을 좀 해줄 수 있다면, 아이의 충격이 훨씬 덜하리라는 배려에서였습니다.
킹 씨 집에 도착했을 때 킹 부부는 집안에 꽃과 동물인형을 배치하며, 에드윈이라는 한국 입양 아이를 맞이할 채비로 분주했습니다.
마침내 심한 뇌성마비로 몸을 전혀 가누지 못하고 한쪽 눈까지 먼, 중증 장애를 가진 아이를 받아 안고, 킹 부인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이의 상태를 보고 그녀가 실망한 것도 무리가 아니라 생각 했는데,
그러나 그녀는 에드윈을 꼭 보듬어 안으며 하는 말은 나를 놀라게 했습니다.
“정말 예쁘군요. 이렇게 예쁜 아기가 어떻게 내 아이가 되었을까요? 내가 운이 너무 좋지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는 믿음을 가진 킹부인이었습니다.
몇해 지난 다음, 다시 에드윈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제 거의 스무 살이 된 에드윈은 엄마 옆에서 나를 지켜보는 느름하게 자란 소년이 되었습니다.
에드윈을 처음 보고 우는 모습을 보고 당황했었다고 말하자 킹 부인이 대답했습니다.
“에드윈은 지금도 늘 나를 울게 만들지요........!
어제도 포크를 여러 번 떨어뜨리면서도 혼자 식사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대견해서 울었답니다.
저는, 눈물이 사랑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에드윈은 제게 사랑을 가르쳐줍니다.”
킹 부인의 말처럼 사랑이란 결국 아주 쉽고 단순한 감정으로 실천하는 데에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불쌍하고 약한 자를 보고 눈물 흘릴 줄 아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네번째 얘기는《어린왕자》를 쓴 생텍쥐페리는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부(富)” 라고 했습니다.
척박한 세상을 살아가며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꼭꼭 숨겨 놓았던 눈물을 찾아 마음의 부자가 된다면, 이 찬란한 하나님의 나라를 찾는 오늘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가난 했던, 피에르는 긍정의 생각으로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근사한 의상을 생각하는 긍정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유명한 의상 디자이너가 됐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의 뜻대로 행하기 때문에 충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믿음에 따른 말씀으로 살기를 다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따라 순종하며 살기를 원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을 헐뜯고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강팍한 마음에서 정의는 과연 옳은 일을 한다고 단정 할 수 있을까(?)하는 괴리 속에 무(無)의식을 소유한 사랑을 생각해 봅니다.
다서번째 얘기는 어느 병사가 전쟁에 나갔다가 무사히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린 아들도, 기르던 개도, 딩굴고 몸을 비비면서 좋아합니다.
부인도 덩달아 좋아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지금, 살아왔기에 아무런 생각없이 즐거워하는 모습들 일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혼탁한 세상을 부비며 살아가는 평온한 가정에서 아들이 말합니다.
“아빠는 엄마가 기르는 귀염둥이야........!!!”하고 말입니다.
아빠은 “아니야. 내가 언제 그랬느냐(?)”고 말하니,
아들은 웃으며, “이렇게 반항하다가 얻어터지는 아빠도 있다니까!”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형태로든지, 여러 가지 정의에 입각한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 속에 “내가 행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아무도 모르게 사랑이 넘치는 행함이 있는 믿음 그러한, 진정한 믿음과 사랑으로 믿음의 향기 아니 사람의 향기를 날리는 건강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형제들 속에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간악하고 행함이 없는 행동으로 마음에 상처를 주고 받는 일들로 마냥, 가슴이 저며 옵니다.
그렇기에,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의 향기를 나타내는 행함의 믿음을 가지고, 꼭 자신이 믿고 행하는 행실이 정의롭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나의 일은 정의로운가(?)하는 것을 항상 한번 더 생각하는 행동으로 올바른 믿음의 형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결국, 우리가 가진 사랑도 나누어 주고, 베푸는 믿음의 형제가 되어, 사랑으로 모든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과 용서로 “행함의 사랑”을 본받는 정의로운 믿음의 형제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8월 17일 정의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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