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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존귀하다.

Edwin Kang 百祥 2010. 5. 2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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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면, 기지개를 켭니다.

그리고는 꼬리를 치며 달려듭니다.

“예쁘다”“귀엽다”“사랑한다”는 수식어와 함께 쓰다듬어 주면, 발랑 누워서, 배를 하늘로 하고는 머리와 발을 흔들어 “순종한다”는 뜻을 표합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시작하는 우리 집에 나와 배우자, 아들 둘, 그리고 애견 둘로 구성된 여섯 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 두리 라는 아버지와 별이라는 딸의 관계인 애견은 온 가족에게 대화의 끈을 이어주는 한 가족으로 특별하게 사랑받고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받는 두리와 별이가 내가 밖으로 운동을 하려 나가려 하면, 마구 짖어대며, 발 뒷금치를 물고 늘어집니다.

부근 뒷산을 데리고 가면, 작은 체구를 이끌고 열심히 따라옵니다.

내가 힘이 들어 산마루에 누우면, 내 주위를 맴돌며 두 마리가 마구 짖어댑니다.

손으로 잡아 당겨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내 주위를 맴돌며 계속 짖어댑니다.

시끄러워 일어나 앉으면서, 두 마리를 안아주면 내 얼굴을 할거나 몸으로 마구 비벼댑니다.

 

지나가던 노인 분이 “그 녀석들, 주인을 무척 보살피네요.....!!! 사랑스럽죠?”하고 지나칩니다.

“예. 사랑스럽습니다”는 말을 전하고,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내가 힘들어 누워 있을 때, 다른 때와 달리 조금 이상해 보이니까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저희들도 힘들 터인 데에도 불구하고 “시끄럽게 짖으며, 다른 사람에게 알리려고, 내 주위를 돌았구나!”하는 생각에 더욱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애정이 느껴졌습니다!

바로, 그 때에 두리와 별이의 존재감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나는 “나 자신의 존재감에 대하여 생각하며,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생각 없이 살아가는 바보라서가 아니라, 어떤 때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어떤 때는 상황과 전혀 다른 엉뚱하고 쌩뚱 맞은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나 자신의 가치를 얼마나 알고 살아가는 지, 항상 생각하는 자성의 시간을 원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곳에서, 나의 이름을 정정 당당하게 부르기를 원하는 그런 마음 말입니다.

당당함으로 인하여, 자존감을 회복하기를 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하는 것은 실천에 옮겨야 하는 성품, 바르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에는 어떠한 모양으로라도 바르게 세우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마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하기에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내 가족에게도 힘겹게 만드는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그 이유로서, 왜(?) 나는 남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에 때로는 열성을 부릴까(!?)하는 것 때문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소홀히 보아 넘길 일이 아닌데, 다른 사람들은 가볍게 념겨 버리는 것을 보면, 그 사람들이 무책임하다는 말인가(?) 아니면, 내가 너무 작은 일에 민감하다는 것인가(?)하는 의구심을 갖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보통은 나와 관계가 없으면, 쉽게 넘겨 버리거나 관여를 하지 않으려는 무관심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의 진가를 지금부터 더 빛나게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그 동안 살아온 기간 동안에 보람된 일이나 보람되지 않은 일에 대한 비중을 평가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서 나를 보면, 나는 나의 일에서 60%는 보람된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활발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주고, 알려주고, 깨우쳐 주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주변은 그러한 생각과 환경을 인정하려하지 않고, 능력을 폄하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면, 진실로, 진실로 저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 곤, 한답니다.

 

외국에서 힘겹게 일을 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이 모처럼, 태국에 여행을 하였답니다.

그 여행지에서 코끼리 쇼를 구경하게 되었답니다.

쇼를 진행하던 진행자가 이벤트 행사로 코끼리를 울려 눈물을 흘리게 하면, 소 한 마리를 준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많은 사람이 코끼리를 울리려 했지만, 울리지 못했습니다.

그 때에 힘겹게 생활하다가 모처럼 여행을 왔던 사람이 이벤트에 참여를 했습니다.

행사장 앞에 나가서, 코끼리 귀에 대고 뭐라고 한참을 얘기하니까(?), 그만 코끼리가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코끼리를 울려 눈물을 흘렸기에 이벤트에 당당하게 당첨되었고, 소를 상금으로 받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코끼리를 울리려 하였지만, 울리지 못하고 패 했는데, 상금을 받게 된 이유를 물었답니다.

그 때에 상금을 탄 사람의 답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내가 외국에 나와서 많은 고생을 했던 얘기를 들려주었더니, 코끼리도 서럽고 슬퍼서 그만, 코끼리가 울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코끼리를 울리는 것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만, 단순하고 순수한 코끼리였기에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많은 고만을 했다면 결코, 코끼리는 울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견주어 생각해 보면, 많은 배우들이 많은 사건들을 접하며, 연극내지는 영화를 촬영을 할 때에도 그 배경 인물에 몰입하지 않는다면, 그 극중 배경에 맞는 배역을 소화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설사, 조금 어긋나게 배역을 소화해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그 작품의 수명은 길지 않다”는 사실이 중요할 것입니다.

 

작은 일이지만 소홀히 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진행할 때에 그것이 모여 큰일을 만들어 간다는 격언을 생각해 봅니다.

요즘, 부정부패를 보더라도 잘 못된 고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소홀함으로 인하여, 커다란 이슈가 되는 안타까운 사건들을 보는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그 청년 바보의사”라는 책의 내용처럼 사는 것이 얼떨까(!) 생각해 봅니다.

의사가 되기를 소망하던 한 청년은 헌신과 봉사로 아픈 환자를 찾아다니며 보살펴 주고, 사랑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군에 입대하여 열심히 군무와 더불어 시간이 나는 데로 봉사활동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유행성 출혈열”로 군대 생활 중에 사망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이 찾아 왔다고 합니다.

그는 살아있으면서도 헌신적인 봉사활동으로 사랑을 받았고, 죽어서도 많은 사람이 추앙하는 대상 인물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는 살거나 죽은 뒤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남겨진 이름이 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면, 바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해답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우리들의 얼굴 모양이 20대에는 바로바로 변하고, 40대에는 반나절 별로 변하고, 60대가 되면 하루가 지나야 변한다는 속설처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주목하고 살펴보면서, 형통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존귀한 사람은 존귀한 생각으로 행동하며, 귀하게 살아갑니다.

많은 사람이 추앙하는 복 받은 사람이 되는 것도 나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지, 남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늘 높이 날고 있는 높은 하늘의 연이 나는 것을 보면, 긴 끈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도 바른 생활 속에서 기도하며, 영적으로 오래오래 연결되어 져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나를 지배하시는 하나님도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에, 나 자신을 찾아 자신의 가치를 알고, 귀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적당한 때가 있습니다.

조금은 힘이 들어도 그것을 이겨내며, 인내하며, 참아내는 참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때,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때를 말입니다.

알지 못할 때는 모르지만,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을 알고 있는 그 때에 바로 실천하는 사람이 성공으로 이끌려 가는 지름길일 것입니다.

 

지름길을 찾아 실천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살아가는 자에게 넘치는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이 임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함께 작은 일을 귀하게 실천하여, 존경과 영광과 축복을 찾는 존귀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5월 20일에 지도하는 기업의 성공을 위한 마음으로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