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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두리가 네 살이 되었습니다.
2003년 8월 20일에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간에 온갖 재롱을 부리는 행동이 정겨웠기에 가정 분위기가 부드러워 진 것을 인정합니다.
온 가족이 이구동성으로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두리를 좋아하며, 사랑한답시고 짝을 지어주지 않고 홀로 두기가 안쓰러워했습니다.
그러던 때에 요크셔테리아 암컷을 가지고 있는 옆집 아줌마가 “우리 두리가 잘생겼다”며 구슬리는 모습이 예뻐 보여, 두리를 장가보냈습니다.
우리 집 두리는 정말 귀엽습니다.
왜냐구요? 예뻐하니까 귀엽다는 논리가 아니라 귀여움을 받을 짖을 하니까 정말 귀여워진 것입니다.
물론, 말 못하는 짐승이려니 생각하기 때문에 가까이 닦아오도록 하는 두리의 행동에 반하기도 하였겠지만,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그 이유는 짐승이기 때문에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을 했는데, 정을 주면 주는 만큼, 더욱 더 가까이 따르며, 귀여운 짖을 하는 행동에 반하게 된 까닭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삶속에서도 사람의 능력을 미리 예견하지 말고, 개인의 능력을 진행하는 행동으로 지켜보는 느긋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포기는 하지 않으면서도 포기에 가까운 생각으로 묵묵히 지켜본다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대방의 행동에서 장점을 찾을 수 있다는 논리 속에 상대방이 예뻐 보일 수 있다는 평범하면서도 귀한 진리를 알 수가 있다는 것 말입니다.
성급하지 않으면서도 서로가 서서히 시간을 가지고 느끼는 사랑, 진정한 마음으로 사랑하게 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기히 언급 했듯이, 나는 개를 사랑스럽다, 귀엽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는 사람인데, 지금은 정말로 사랑하게 되었고, 사랑이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이 일치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내가 생각하는 사랑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으로 인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두리로 하여금, 다시 재확인하여 얻게 된 결과입니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두리의 짝은 초롱이입니다.
암껏이라는 생각에 이름은 여성스러운데, 얼굴이 펑퍼즘 한데다가 살이 얼마나 많이 쪘던지, 뚱땡이로 보이고, 새끼의 모양을 상상하면 정말, 강아지를 사랑하게 될 것인가(?)하는 걱정이 되었답니다.
그러나 약속은 약속이니 만큼, 며칠 동안 함께 살았습니다.
그 결과 얼마 후, 숫 컷 한 마리에 암컷 두 마리를 생산하였으나, 숫 컷은 새끼 보를 잘 처리하지 못하여, 저 세상으로 보냈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귀중함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답답하고 몹시 궁금도 했지만, 한 달 후에 구경을 해야 한다는 굿은 말에 참고 있었습니다.
초롱이 집에서 강아지 새끼를 구경하러 오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겼을까(?)하는 의아심에 내심 걱정이 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소고기 미역국 등을 먹여서,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키웠던지, 강아지 새끼가 아니라 곰 새끼 같은 기분이 들었답니다.
언뜻 보기에는 곰 같으면서도, 재롱을 부리는 행동은 새끼 강아지 자체 였습니다.
그레도, 강아지와 곰 새끼를 연상을 할 수 있는 기쁨은 우리 식구에게 많은 웃음꽃을 피웠답니다.
두 달이 되어가는 어느 날, 초롱이를 키우던 아줌마는 강아지 2세 중에 한 마리를 가져다가 키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짐승을 키우는 법도라면서 말입니다.
우리 식구들에게 물었더니, 매우 좋아하며, 모두 혼쾌히 승낙을 하는 것입니다.
새끼와 재미있게 놀아주며 같이 살아가는 “개 팔자도 좋은 일이지!”라는 생각에 승낙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강아지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에 암컷이니 “별”이라고 지으면 좋겠다고 제안하는 아들들에게 “너희가 좋다면 나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정한 이름 “별”이 한 식구가 되었답니다.
그렇게 함께 살게 된 별이는 2007년 4월 5일에 태어나 오늘로 95일째 되는 애숭이 새끼입니다.
“별이”가 집에 온 직후부터 “두리”의 행동이 조금 달라진 것입니다.
새끼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을 할 수가 없으니 모르겠지만, 두리의 행동을 보면서, 기강을 확실하게 잡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 쓴다고 생각하는 가운데에 가족의 웃음꽃은 만발했습니다.
별이가 장난을 청하면, 두리는 짖으며 식구들의 눈치를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리가 별이를 앞발로 치면서, 큰소리로 짖어 대면, 별이는 거실바닥에 발랑 누워 발을 허공에 대고 발차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 번의 행동으로 깨달은 것은 순종의 표시이며, 따르겠다는 애정 표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행동을 보면서, 인간은 서열과 순서를 정 할 때에 어떻게 정 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로 돈 많은 사람 앞에 서열과 순서를 정하는 사회이며, 둘째로는 권력 앞에 서열과 순서를 정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합니다.
있는 자가 굳이 어떠한 고집을 부리게 되면, 권력자나 서민을 막론하고, 모두 그 앞에 굴복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누구나 빨리 터득하는 사람만이 살아 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일을 알려주는 일에 감사의 뜻인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무엇이냐고요? 지금은 개 알레르기가 없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두리와 별이를 키우면서, 평범한 속에서 새롭게 얻어지는 진리를 다시 깨닫게 되는 진리를 통하여 다시금, 순환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옛말에 “사람 못된 것은 개 보다 못하다”는 말이 새삼 이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별이가 집에 옴으로 써, 바꿔진 문화가 있습니다.
첫째로 두리가 밥을 먹을 때에 밥그릇에 항상 밥이 남아 있었는데, 모두 비운다는 것입니다. 남겨두면 별이가 먹으니까 주는 데로 다 먹어 치워버리는 것입니다.
둘째로 두리가 오줌을 잘 가렸는데, 여기저기에 영역표시를 하는 지, 오줌을 찔끔 찔끔 눋고 다니니까, 별이도 가리던 오줌을 여기 저기 방바닥에 조금씩 눋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한 놈(별이)을 예뻐하면 다른 한 놈(두리)이 닦아 와서 예뻐해 달라고 질투를 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두리와 별이가 그때 그때 치우다 보니, 먹이의 양도 많아졌다는 사실입니다.
다섯째로 처음에는 서로 경계하며 잘 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서로 잘 놀고 있으며, 두 마리가 경쟁하여 귀여움을 부리는 것에 웃음이 두 배 랍니다.
예뻐 보이는 두리와 별이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인간들의 평온함을 여기에서 찾는구나 하고, 미소 지으며 잠이 듭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목이 마른 상태로 헛기침을 하기가 무섭게 두리와 별이가 방문 앞에서 짖어댑니다.
잠에서 깨어나 작은 소리가 나면, 벌써 문 앞에 두 놈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리는 종전처럼, 나에게 “찡찡”대며, 침대로 올려 주기를 요청합니다.
그러나 별이는 나를 보는 순간, 사람이 엎드리듯이 방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다가 뒹글어 천장을 보면서, 앞뒤 발을 하늘로 올리고는 허공에 발차기를 거듭하여 귀여움을 떨곤 합니다.
두리를 앉고 부빈 후, 별이에게 부비어 줄려는 때에 부들부들 떨면서, 얼굴 여기 저기 할 것 없이 닫는 데로 핥아줍니다.
인사가 끝나면, 앞뒤를 막론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먹을 것을 달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항상 먹을 것을 놓아둔 주방 옆 작은 창고 앞에 주저앉아 있습니다.
마치, 주방 아줌마가 된 듯한 기분이 듭니다.
먹을 것을 손에 잡은 것을 보는 순간, 두리와 별이는 나의 주위를 뛰며 빙글빙글 돌면서, 좋아하는 순진 무고한 모습에 웃음꽃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됩니다.
출근을 하려고 하면, 나의 뒤를 졸졸졸 따라다니면서, 두 마리가 짖어 댑니다.
“조용히 해라?”고 큰 소리를 치면, 그 자리에 앉아 나를 처다 보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좋다고 하는 행동을 제재 했기에 불쌍하게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대견하게도 보입니다.
내 말을 알아듣고, 다음 행동을 기다리는 두리와 별이를 보면서, 짐승이지만, 때로는 우리 인간을 즐겁게 하고, 때로는 위로 한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사랑스러워 집니다.
아무 말 없이, 나오려는 나에게 다시금 짖어 댑니다.
그 때에 아내와 포옹을 하고 있으면, 조용히 있다가 현관문을 열고 조용히 나오려는 나를 보면서, 두리가 다시 짖어 댈 때에 별이도 소리는 적지만 함께 짖어댑니다.
귀찮아도 뒤 돌아서서 두리와 별이에게 “집 잘 지켜라!”고 하며 쓰다듬어 주면, 손을 핥다가 잘 알았다는 듯이 슬며시 뒤돌아 갑니다.
무엇인가 잘 판단하며, 좋아하는 방법으로 사랑받는 방법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선한 심성(心性)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좋은 것만을 기억하고 나쁜 것은 빨리 쉽게 잊어버린다”는 개의 습성 말입니다.
출근하여, 나의 반려자와 전화라도 통화를 할 때면, 목소리를 아는 두리가 짖어대는 소리에 별이도 아는지 모르는지 함께 짖어대는 소리에 한바탕 더 웃어봅니다.
그 때에 아내가 두리를 앉고 전화기를 귀에 갔다 댈 때에 “두리? 집 잘 지켜라!”하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조용해지는 영리하고 사랑스런 놈인데, 별이는 전화 목소리를 들려주면, 바등대며 귀찮다는 듯이 도망간다고 합니다.
귀가 시, 아내에게 집에 들어간다는 말을 하지 않고 귀가해도, 현관에 들어서면 벌써, 두리와 별이를 옆에 끼고 현관에 나옵니다.
두리는 발자국 소리나 자동차 소리를 듣고 내가 온 것을 알아차리고는 아내에게 “끙끙”대며 짖어 대거나 두리 몸으로 부비는 행동을 할 때에 모른 체하고, 그냥 앉아 있으면, 옷을 당기거나 발로 긁어대며, 계속 “끙끙”거리고 밖을 쳐다보고 이리 저리 뛰며 왔다갔다 부산을 떤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별이 까지 가세하여 “멍멍”짖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좋아한다고 합니다.
아내의 말에 “당신이 온 것을 두리 때문에 알지.....! 거기에 꼭두각시처럼, 덩달아 좋아하는 별이를 보고 알게 되는 데, 당신은 좋겠쑤.....!”하는 것입니다.
두 마리의 강아지 때문에 생기는 은근한 질투심 그리고 새롭게 싹트는 부부의 사랑과 가족의 사랑이 여기에 있습니다.
귀가하여, 나를 만나는 두리와 별이는 좋아 짖으며 귀를 늘어뜨리고 혀를 날름거리며, 반가워 어찌 할 바를 모르는 사랑스런 두리와 별이입니다.
두리와 별이를 번갈아 위로 들어 올리면, 마구 얼굴을 부비고, 부들부들 떨기도하며, 어찌 할 줄을 모르는 듯이 좋아한답니다.
그런데, 별이를 표나게 오래토록 예뻐하면, 두리가 마구 짖어대며 달려듭니다.
그레서, 바닦에 별이를 내려놓으면, “어~엉, 어~엉~?”소리와 함께 눈을 흘기며 무섭게 혼내 킵니다.
버릇이 없다고 나무라는 듯이, 사랑의 질투를 하는 것 같은 행동에 적개심 마져 느끼게 됩니다.
공정한 사랑을 원하는 행동에 두리를 다시 앉고 쓰다듬어 주며, 두리가 “가장 예쁘다”고 격려해 준 이후에 별이와 잘 놀지만, 그렇지 않으면 잘 놀아주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짐승이지만 사랑을 주니까 되돌아오고, 간수하기에 따라 오가는 정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서, 짐승보다 더 많아야 하는 인간들의 사랑이 개인의 영악함 때문에 분해된다는 생각에 조금은 씁쓸한 깨달음을 더하게 됩니다.
성경에 사랑은 온유하며, 이유 없이 주고받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되면서 말입니다.
두리가 가만히 있을 때에 아내를 때리는 시늉을 하면, 마구 짖어대며 지키겠다는 의지를 표시합니다.
이 때에 별이도 함께 짖어대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행동에서 가족이 하나 됐을 때에 생기는 용기와 힘, 그리고 우정어린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서로의 댓가를 생각지 않고, 무언의 행동으로 뭉쳐지는 가족사랑, 인간의 보호본능 제1호와 같은 바로 그러한 행동 말입니다.
그러한 좋은 행동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우리 식구들의 행동을 보고 배워가는 두리와 별이를 보면서, 한 식구임을 재삼 느끼게 됩니다.
“한집에 같이 사는 모든 것은 주인을 닮아간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떠올리며, 두리와 별이가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고 선포해도 되겠지요?
너무나 귀여운 나머지, 두리와 별이를 쓰다듬고, 굴리고,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귀찮게 해서 싫어지면, 두리와 별이는 침대 밑으로 살며시 숨어 버리는 순진하고 아름다운 행동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사람의 외모를 먼저 보게 됩니다.
사람의 됨됨이를 보기 전에 겉모습으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강아지가 가지고 있는 영감 보다 사람의 영감은 몇 백배 아니 몇 천배 높을 텐데, 짐승보다도 못한 가벼운 행동에 답답함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구별하여 “땅에 현존하는 모든 기는 것과 나는 것을 다스리라”고 할 때에 하나님이 주신 태초의 초심을 지켜 실천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위대한 사람 뒤에는 위대한 어머니가 있다고 말들을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깃 들여진 기도는 자녀의 일생을 바꿔준다고 했습니다.
성자 어거스트를 위해 어머니 모니카는 끊임없는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어거스트가 17세에 가출하여 나쁜 일을 많이 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니카는 아들 어거스트 때문에 낙심하지 않고 계속하여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어거스트는 20년이 지난 37세에 가정으로 돌아 온 것입니다.
그때에 어머니 모니카는 어거스트에게 신학을 공부시켜 주의 일을 하는 주의 종(목사)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후, 그는 중세 신학에서 크게 사용되는 성자로서, 장로교 교리를 만든 창시자이자 성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로 성자가 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을 간증하였다고 합니다.
이를 볼 때에 우리는 가장 작은 일에 사랑을 심어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가족에 즐거움으로 사랑이 넘치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행복과 사랑이 충족되므로 인하여 오래토록 기억되는 생활 습관을 길러 나아가야 합니다.
바로, 조용히 나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행동입니다. 실천입니다.
작은 짐승이 반겨주는 사랑을 느끼듯이, 서로를 믿어주는 고귀한 사랑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개판이 아닌 참다운 사람 판으로 우리 모두의 믿음과 건강과 사랑으로 하나 되는 행복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7월 9일 사랑스런 두리와 별이를 지켜보며, 느낀 감정을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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