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세상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한 새로운 희망

Edwin Kang 百祥 2007. 2. 2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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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새롭게 맞이하는 아침은 새로운 기회를 알리라는 기쁨의 신호입니다.

우리가 오늘을 소중하게 맞이하였기에, 내일을 기다린다는 것은 기쁨과 행복입니다. 내일은 항상 새롭게 닦아오기 때문에 희망이 있습니다.

어제는 아쉬운 것도 있고, 내일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오늘이 있기에 만족하지 않고, 내일에 새롭게 도전하라는 희망과 도전의 전령사인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행복과 축복이 새롭게 주어진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좋은 기회를 찾지 못하는 경우를 목도하게 됩니다.

누구나, 필요한 순간을 찾아 헤매다보니,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이탈하였기에 무엇을 찾아 다녔는지 조차 알 수 없는 무의미한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고통과 슬픔 속에서 인고의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야, 다시 깨닫게 될 때에는 이미 늦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놓여진 자신의 위치를 잘 파악하여 현명하게 대처한 사람은 좋은 환경과 좋은 여건으로 새로운 희망과 축복을 맞이하게 되는 것을 자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진실과 성실 속에서 어느 쪽이 옳은 것인가 하는 것 보다, 이 두 가지에 꾸준하게 변함없이 노력을 가미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는 대목입니다.


인내(忍耐)한다는 것은 세상의 온갖 것을 터득하는 기회를 맞는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그 기회를 찾기 위해서는 각자의 눈이 정확하고 소중해야 합니다.

보는 것으로 시작하여, 생각하게 되고, 다시 한번 생감(生感)하게하여 말(言語)을 할 수 있도록 하며, 이를 실천하는 행동에서 반복적인 습관이 생기게 되는것입니다.

이러한, 분명하고 평범한 진리는 누구에게나 모든 사물을 가장 올바르게 표현하는 마음의 진실한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생각 한다는 것은 좋은 환경과 나쁜 환경의 영향이 첫째일 것입니다.

바로, 생동감 있는 생각을 갖는 것이냐(?) 아니면, 사감(死感)의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냐(?)에 따라서 미움과 시기와 분노 등의 말과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구분된 말은 행동으로 이어져서, 좋은 생각과 좋은 말로 행동하는 사람은 희망과 행복을 찾아 성공하게 될 것이지만 반대로, 나쁜 생각에서 나쁜 말을 쫓아 행동하는 사람은 악하고 추한 결과로 패배자의 길로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좋은 습관을 갖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선인들은 “사람의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어 성공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사랑의 눈으로 감각적인 감정을 고정시켜 바르고 정직한 마음으로 행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누구나, 새 사람으로 변화되는 착하고 선한 심성(心性)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이 힘들어도 찬란하게 비치는 내일의 아침 햇살을 맞이할 때에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꿈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소망을 갖아야 하는 것입니다.

너그럽고 감사한 마음으로 넓게 보고, 멀리 보는 혜안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우리와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사람들 속에는 행복한 사람들의 숫자가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세상에 소망과 희망이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살아가는 방식과 묘미를 터득하며, 아름답게 살아가야하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누구나 환경을 따라가는 우매한 사람보다, 환경을 새롭게 변화하는 즐거움 속에 살아가는 현명함이 고요한 평화의 마음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성경의 잠언서 24장 13~14절에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 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니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혜가 많은 세계 제일의 유명한 발명가 에디슨이 학업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까지, 그를 무식자이자 생각이 잘 못된 사람이라고 혹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시, 시대와 환경에 약간 맞지 않았지만, 그의 생각과 실천으로 가장 뛰어나고 훌륭한 발명가로 남아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는 세계 유일하게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습니다.

세계 최초의 극장용 영사기, 축음기, 백열전구(대나무 탄산 필라멘트) 등 그의 지혜와 창의적인 선견지명(先見之明)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러한, 그가 당시의 신문기사에 적혀진 글귀에 눈 여겨 봅니다.

“I would like to live about 300 years, I think I have IDEAS enough to keep me busy that long.= 나는 300년을 살고 싶다. 그래도 바쁘게 살아갈 충분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라는 글귀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오래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무의미한 삶을 얘기한 것이 아니라 많은 일에 대한 희망을 표현한 것이라 판단됩니다.

여기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 우리의 뇌를 사용하는 양(量)을 측정한 연구 자료를 보니,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뇌의 사용량은 우리 뇌의 10%정도 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사망한다는 연구결과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을 찾으라면, 아인쉬타인 이나 에디슨같이 많은 것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약30% 정도를 사용하다가 하직한다는 수치계산법에 의한 연구 자료가 고작인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 인간의 뇌를 사용하는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정하게 사용 할 수 있다는 표현입니다.

하여튼, 우리는 더 많은 창의성에 입각하여 소중한 지혜를 많이 얻어서, 목표를 달성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불어 사는 인생에서 많은 인연으로 아름답게 만들어가야하는 이유입니다.


조선시대 26대 왕위1903년 어느 날, 당시 미국 공사로 있던 앨런이 고종 황제와 마주앉은 자리에서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를 소개한 변화의 얘기를 덧붙이려합니다.

고종 황제가 축음기 설명을 듣고, 믿을 수없다는 듯이 머리를 가로 저었다고합니다.

그러나, 고종 황제가 시험해 볼 요령으로 당시, 경기 명창인 박춘재를 불러 “적벽가”를 한 대목 부르게 하였다고 합니다.

잠시 후, 앨런은 축음기를 재생하여 적벽가를 들려주었답니다.

그때에, 너무 놀란 박춘재는 얼떨결에 바지를 적시는 실례를 하였다고 합니다.

박춘재의 목소리가 그대로 재생되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겠지요!

문명의 이기가 부른 아둔한 생활상의 한 장면이라 여겨집니다.

그를 본, 고종 황제는 박춘재를 위로하기 위해서,“너의 명(命)이 10년은 감해졌겠구나!”하며, 크게 웃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몹시 놀라거나 어리둥절 할 때에 “십년감수”라는 말이 쓰여졌다고합니다.

부족한 환경 속에서 너무 급격한 변화는 정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많은 문제를 유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커다란 무리가 없다면, 올바른 정신을 가진 아름다운 시작이야 말로 좋은 경험으로 정확하게 분별 할 수 있는 환경의 새로운 시작이 될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성공자의 향기를 맛 볼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여,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더불어 가는 고요한 평화를 만들어 가야하는 것입니다.

서로 촉감을 느끼는 아름답고 지혜 있는 꽃향기 같은 언어와 행동으로 오래 오래 지속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과 축복을 위한 도전이 새로운 꿈과 목표에 대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2007년 2월 26일에 자성하는 마음으로 희망을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