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는 내용

쪼다와 지혜의 의미

Edwin Kang 百祥 2011. 7. 2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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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의 말경주장]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는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많은 방법과 여러 가지 형태 속에서 기본적인 근원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 민주국가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산주의 국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동등한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기본 사상에서 발전하여, 물질과 정신은 함께 영원히 존재 한다는 원리의 뜻에 따라 삼권분립이 유지되는 민주국가가 존재합니다.

반대로, 공동소유와 평등한 소비에 기초해서, 무계급사회의 수립을 추구하는 사상운동과 같은 성과로 수립된 사회체제를 공산주의 사회라고 하는데, 마르크스, 앵겔스에 의해 확립되어 존재합니다.

 

두 가지 형태가 공존하는 지구촌에서 삶의 방법은 비슷해 보이지만,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삶의 방법에서 보면, 민주국가는 개인의 소유가 인정되기에 아귀다툼과 같은 방법으로 모두가 억척스럽게 살아갑니다.

그에 비하여, 공산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경쟁 보다는 시골에서 순박하게 커다란 꿈이 없이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 국가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경쟁이라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대로 살아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들은 경쟁이라는 생각을 안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들의 세계와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다는 형태를 보고 배운 공산주의자들은 민주주의의 폐단인 비리를 없애고, 일부 개인의 재산을 인정하는 공통점을 찾아가고 있는 방식이 신사회주의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구체적인 학문적인 내용은 배제하고, 구심점을 가지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 말입니다.

 

요즘, 신사회주의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

그들도 [우리는 “쪼다”가 아니다.]는 생각으로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를 깨달으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신사회주의 문화를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민주국가 보다 더 많은 부정부패가 만연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옛 속담에 “늦게 배운 도적질, 날 새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부정부패 없이 잘사는 방법을 찾겠다는 그들이, 앞장서서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례를 많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순진한 서민들은 관심도 없고, 다른 방법을 시도할 생각도 거의 안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에서 배워 몸에 배인 “조용히 내 할 일 하면서, 조용히 먹고 살면 된다”는 관습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개인과 개인, 국가와 국가의 거래를 위해서, 가장 보편적인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 문화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가장 타당한 방법으로 협상 할 줄 아는 지혜가 너무도 필요함을 다시 새겨보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 받으면 됩니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능력만큼 일하고 실적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공산주의는 재산이라는 개념이 없지만, 사회주의는 개인 재산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회주의는 국가가 모든 생산을 주관하여, 공정하게 노동자들을 관리하고, 공정하게 평가해서 월급을 주겠다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 무역을 하기 위해서 외국에 나가 활동하다보면, 우리의 방식으로 그들을 다스리려는 무지한 사람들로 인하여, 잘 이루어질 국제무역이 흐트러지는 사례를 왕왕 보는 저의 시각으로는 매우 안타깝게 보여 지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화제를 바꾸어, 지혜의 반대말 격인 “쪼다”의 어원을 이해하려 합니다.

국어사전 단어를 찾아보니, “쪼다”는 명사로서 “조금 어리석고 모자라 제구실을 못하는 사람 또는 그런 태도나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의어로는 “등신” “병신”이 있으며, 동사로서 “쪼ː다”는 “뾰족한 끝으로 쳐서 찍다”로, 동사의 유의어로는 “찍다” “먹다”로 표현되어 있으며, 영어사전에 “쪼다”는 1. peck 2. chisel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쪼다”에 대한 어원을 다음에 유래된 몇 가지 내용으로 나누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쪼다”는 한자로 조두아(鳥頭兒)가 변해서 만들어진 말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한문 ‘조두아’는 뜻 그대로 ‘새 대가리, 애기 새머리(애새끼)’라는 말이니, ‘멍청한 놈’이란 뜻입니다.

예로부터 머리가 나쁘면 ‘새 대가리’라고도 불렀던, 옛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또한, 중국어 발음이 “쬬우두아”이다보니, 이것이 조두아>조돠>조다>쪼다가 된 것으로 추정해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둘째로 “쪼다”의 여러 글 가운데의 하나인 조대(措大)의 어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글은 중국의 소씨연의(蘇氏演義)에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중국 정주의 동쪽에 초구가 있는데, 이 마을에는 선비들이 많이 살고, 초구의 동쪽에는 귀족이 더욱 많이 살고 있어 초대(醋大)라는 말이 생겨났으며, 중국어 발음으로 초대와 조대가 모양도 비슷하고 뜻도 비슷해서 조대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조대(措大)라고 할 때 조(措)는 ‘처리하다’는 뜻으로, ‘큰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란 뜻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생각만 크고 실제 행동은 따르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조대(措大)는 초대(醋大)라고도 부르는데, 조대와 초대를 중국식으로 발음하면 거의 ‘쪼다’가 됩니다.

이것이 우리말의 ‘쪼다’라는 말의 어원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고구려 장수왕이 아들 ‘조다’보다 더 오래 살았기에 전해지는 내용입니다.

장수왕은 93세까지 살았고, 영토도 가장 많았기에 아들 “조다”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통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수왕의 아들 “조다”는 아버지보다 더 빨리 죽어, 그 좋은 전성기 때에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입니다.

그냥 건강하게 잘 살면서 기다리고 있기만 하면, “조다”는 왕이 되었을 것을 장수왕 보다 먼저 죽어서 왕이 되지 못했다고,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조다”가 안타깝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바보 같은 사람을 조다”라고 호칭되어 유래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궁금증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몇 명(태양이라는 사람도 고구려 왕조에 있는데, 왕위에 못 올랐다고 합니다.)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조다’가 “쪼다”가 되었느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앞에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라는 엄청난 업적을 남긴 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죽어버렸기 때문에 업적을 남기지도 못하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기에 “쪼다”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조다”가 “쪼다”로 약술되어 ‘덜떨어져서 제구실을 못하는 사람’을 낮추보아 이르는 말의 하나로 전해져 온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또 하나의 “쪼다”어원은 일본어에서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일본말에 ‘조다’가 있습니다.

뜻은 글자 그래도 ‘긴뱀’이기도 하려니와, ‘탐욕에 찬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여기서부터 출발된 말이 아니었던가(?)그러니까, 처음에는 제법 일본말에 조예가 깊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가 그것이 학생층으로, 그것이 다시 한 번 상승하여 성인층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지성이면 감천이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항상, 좋은 생각으로 좋은 일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늘도 감동한다는 뜻 입니다.

 

옛 그리스 국가를 융성하게 한 후리지아의 마이더스 왕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마이더스 왕은 박카스 신의 양아버지를 극진하게 돌봐주었습니다.

그러자 마이더스 왕의 꿈에 박카스 신이 나타나 소원을 하나 들어 줄 것인데, 무엇을 도와줄 것이냐(?)고 물었답니다.

마이더스 왕은 “나의 손으로 만지는 것마다 금이 되게 해 달라”고 소원을 말했답니다.

꿈에서 깨어나 소원이 이루어졌음을 통감합니다.

그러나 “과욕은 불급”이라는 말처럼,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밥을 먹기 위해서 수저를 잡으면, 수저가 금으로 변합니다.

빵을 먹기 위해서 손으로 잡으면, 빵이 금으로 변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사랑하는 딸을 예뻐하기 위해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딸이 금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적당하게 변하는 지혜를 구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느끼는 일화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라는 히브리어는 레쇼미아인데, “듣는 마음”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이 하는 말을 잘 듣고 있다가 필요한 것만 사용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지혜{智慧/知慧}를 행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참 뜻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급해서 실패하고, 참지 못해서 살인하는 형태를 자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장 현명한 지혜를 구한 “솔로몬의 지혜”를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랑이 아닌 누구나 공감대를 형성하는 마음을 갖추는 것 말입니다.

 

솔로몬의 재판에 대한 얘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를 낳아 아름답게 키우는 어머니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에 관한 얘기 말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머니가 부러워하던 터에 자식을 키우고 있는 어머니의 아이가 나의 아이라는 생때를 쓰게 된 것입니다.

이 어머니는 너무 억울하여, 솔로몬 왕 앞에서 재판이 열린 것입니다.

솔로몬은 어머니와 여인의 말을 들어도 답을 찾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마음에서 솔로몬이 기도하여 지혜를 얻었습니다.

솔로몬이 결론을 내립니다.

“왕으로 써, 명한다. 이 아이는 두 사람이 다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하니, 이 아이를 둘로 나누어 가져라!”는 판결을 내립니다.

그때, 아이의 어머니가 아닌 여인은 솔로몬 왕이 가장 공정한 판단을 내렸다며,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이의 진짜 어머니는 “내가 잘 못 했다”며, 이 아이를 그 여인이 데려다가 키우도록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솔로몬 왕은 최후의 판결을 내립니다.

“이 아이의 진짜 어머니는 잘못 했다며, 아이를 데려다가 키우라는 어머니”라고 판결합니다.

물론, 아이를 나누자고 한 여인은 아이를 갖겠다는 욕심만으로 과욕을 부린 것이기 때문에 진짜 아이의 어머니가 아님을 알게 되어 험한 죄를 받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일을 결정 할 때에 타인의 입장에서 한 번쯤, 다시 생각하고 베려하며,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에 “쪼다”라는 표현을 듣지 않는 현명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끝으로, 성경 속에 나오는 지혜[히브리어 호크마(hokmah)]가 141회 나온다고 말합니다.

성경 속에 호크마의 여러 가지 의미를

1. 기술적인 능력(출 28:3; 35:26; 왕상 7:14)

2. 영리함, 기민함(왕상 2:6; 3:28; 욥 39:17; 사 10:13; 29:14)

3.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지혜(왕상 4:30; 사 47:10)

4. 경건한 지혜(신 4:6; 시 37:30; 90:12;잠 10:31; 사 33:6; 렘 8:9)

5. 하나님의 속성으로서의 지혜(시 104:24; 잠 3:19; 렘 10:12; 51:15)

6. 의인화된 하나님의 지혜(잠 8:1-36; 9:1-6)

7. 인간의 이상적인 지혜(시 111:10; 잠 1:2)로 구분하여 생각하는 지혜를 전달합니다.

“감사합니다.” ===THE END===

                                    

                                      [몽골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된 테일 지 국립공원의 거북바위 앞에 핀 에델바이스 꽃 입니다.2011.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