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구가 일정한 시간 속에서 촘촘이 엮어낸 도표를 벗어나는 일은 별로 없다고 봅니다.
그만큼, 계획된 시간(Time)이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옥스퍼드 영어사전 11판”을 펴내면서, 가장 많이 쓰이는 영어 명사가 ‘Time(시간)’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년(year)이 3위이고, 일(day)이 5위이며, 주(week)가 17위라고 한 것은 한마디로 의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은, 부지불식간에 시간의 사슬이 우리를 옭매고 있다는 느낌이 앞섭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식사하고, 출근하여 근무하고, 퇴근하여 취침하는 등 시계바늘이 가르치는 데로 기본적인 시간 활용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직장인에게 시간에 대한 재테크는 어느덧 기본 도덕률처럼 자리를 잡아 가고 있습니다.
누구나, 천편일률(千篇一律)적으로 주어진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방향이 결정 난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처음에 길을 잘 들여 놓아야 한다는 얘기일 것입니다.
시간을 잘 배분하여 잘 활용하는 습관이 인생의 행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운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올바르고 안정된 자세로 운전을 하는 운전습관 만이 항상 즐겁고 안전하게 유지시킬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운전은 남을 우선 배려할 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의 시간만큼이나 중요한 질서를 요구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운전자가 운전수칙을 잘 지키는 것이 가장 큰 훈장인 것처럼, 우리에게 시간관념 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시간 괘도이자 사표(師表)인 것입니다.
종교 개념에서 “영원한 세상”을 설정하는 것도 인간의 시간적인 욕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등산하는 사람들이 산봉우리에서 흔히, 느끼는 아름다움과 일탈의 욕망 그리고, 해변에서 먼 바다 끝까지 나가 보고픈 일탈에서도 다시, 원대복귀 해야 하는 인간의 슬픈 운명을 탄식하는 자유인들도 강박관념을 버리는 순간부터 영원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속에서, 러시아의 빅토르샤오는 “2004 MN4"라는 소행성과 2035년쯤에 지구와 충돌하여 생명체가 위험에 빠질 수가 있으며, 이러한 생명체 종식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종말에 대한 갖가지 재앙은 믿을 만한 것이 별로 없지만, 소행성과의 충돌, 핵전쟁, 환경오염 등으로 예측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피할 방법이 있다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더 중요한 것은 예측을 할 수 있기에 준비하는 인간의 지혜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시카고대학 과학자들이 만든 “지구 종말시계”(doomsday clock)를 눈여겨 볼만합니다.
이 시계는 인류가 사라지는 시점을 자정으로 표시한답니다. 분침이 자정에 가까울수록 위험도가 높다는 뜻입니다.
제작 후, 지난 60년 동안, 자정 17분 전(1991년 미·러 전략무기감축협상)과 2분 전(1953년 미국 수소폭탄 실험) 사이를 16차례나 왔다갔다하며, 경고신호를 보냈다고 합니다.
이렇듯 인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못한 대재앙은 닥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선가, 이에 대비하는 사람들이 있어 든든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하나님이 지시하여 종자를 남겨주었던 것처럼, 2006년 6월 19일(현지시간) 노르웨이에서는 종자(種子)은행인 “스발바르 국제종자 저장고”를 착공했다는 소식입니다.
이곳에는 쌀 10만종, 바나나 1,000종 등 200만 여종의 씨앗이 보관된다고 합니다.
영구 동토층에 첨단시설로 만들기 때문에 핵폭발이 있어도, 씨앗을 끄떡없이 지켜낼 수 있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고난 속에도 피할 길을 만들어 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지구가 망해서, 단 몇 사람이 살아남아도 그들을 위해 식량을 준비한다는 사업이라니, 참으로 하나님의 섭리인 듯 합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참으로 무궁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인간임을 가르쳐 준다고 생각하기에 진정, 갸륵하고 보배롭습니다.
지구촌 식구들이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이처럼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인류의 복(福)인가 봅니다.
[2006년 6월 16일 강석원 씀]